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 저온/사례 (문단 편집) === [[17세기]] === [[17세기]]는 [[소빙하기]]가 절정에 달해 연도가 네 자릿수로 바뀐 이후로 평균 기온과 최저 기온이 가장 낮았던 시기로 추정되며[* [[서울특별시/기후]] 문서에 작성된 [[서울특별시|서울]]의 일별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확인해보면 상반기는 [[4월 20일]]까지 영하로 뒤덮여 있는데, 만약 [[17세기]]로 범위를 넓힌다면 이 영하의 기온이 [[4월 20일]]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[[4월]] 전체를 뒤덮는 것은 물론 '''[[5월]]까지 영하로 뒤덮일 것'''으로 의심되며, [[강원도]]나 [[충청도]], [[경상도]] 내륙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{{{#blue '''7~8월에도 영하로 추정되는 기온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.'''}}} 그만큼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매우 추웠던 시기.] 이에 관련된 기록들이 아주 많다. 아래 나열된 기록들은 모두 [[조선왕조실록]]이 출처이다. * [[1650년]](효종 1년) * [[2월]] - 음력 [[1월 1일]](양력 [[2월 1일]])에 날씨가 매우 추워져 경범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명했다고 한다. * [[5월]] - 음력 [[4월 4일]](양력 [[5월 4일]]), [[양주시|적성현]][* 現 [[경기도]] [[양주시|양주]]]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. * [[1654년]](효종 5년) * [[3월]] - 음력 [[1월 27일]](양력 [[3월 15일]]), [[강원도]] [[통천군|흡곡]][* 現 [[강원도(북한)|북한 강원도]] [[통천군|통천]]] 등 고을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는데 그 색깔이 약간 붉었다고 한다. * [[1655년]](효종 6년) - 이해는 [[소빙하기]]를 통틀어 '''역사상 최대의 강력한 [[한파]]'''가 찾아온 시기로, [[조선]]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현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[[이상 저온]]이 기승을 부렸다. 아래의 기록들을 참조하면 [[1655년]] 한 해 동안에는 [[소빙하기]]가 아니라 정말로 '''[[빙하기]]에 준하는 비정상적인 추위'''가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며, 이 외에도 전 지구적으로 매우 초기록적인 [[이상 저온]]이 계속되어 사실상 [[1년|서기 1년]] 이후 지난 2,000여 년의 모든 해를 통틀어 가장 추운 해일 가능성도 존재한다. 좀 더 자세한 내용은 [[한파/대한민국 외]] 문서 참조. * '''[[4월]]''' - 음력 [[3월 3일]]'''(양력 [[4월 9일]]),''' [[강원도]] [[강릉시|강릉]], [[양양군|양양]], [[삼척시|삼척]] 앞바다가 '''사흘 동안이나 얼어붙은''' 사건이 [[조선]] 조정에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qa_10603003_001|보고되었다.]][* 이 기록이 믿기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적자면, 당시에는 '기군망상죄'라는 죄목이 있어서 어떤 일을 거짓으로 보고해서 왕을 속인 것이 들통나면 국왕의 진노를 사서 '''[[참수|몸과 목이 분리되는 형벌]]'''을 받게 된다. 따라서 제정신인 신하라면 거짓 보고를 올리기란 꿈도 못 꿀 상황. 게다가 이 결빙 사건이 사실인지 해당 지역에 사람을 보내 확인했다고 하고, 이후로 거짓이었다는 말도 없는 것을 볼 때 '''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.'''][* [[동해]]는 최대 수심이 3,600m에 달할 정도로 깊어서, [[겨울]]에 [[한파]]가 찾아와도 [[황해|서해]]보다 수온이 높다. 따라서 [[강릉시|강릉]]처럼 [[동해|동해안]]에 접한 지역이 '''-25℃ 이하'''로 내려갈 정도의 초강력 [[한파]]가 몰아지치 않는 이상, [[동해]]는 결빙이 불가능하다. 그런데 이해에는 [[1월]]도 아닌 '''[[4월]]에 [[동해]]가 결빙되었다'''고 하니, [[4월]]에 [[강릉시|강릉]]의 최저 기온이 과연 몇 ℃까지 내려갔을까? 게다가 [[4월]]이 이 정도였다면, [[1월]]에는 최저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. [[4월]]에 [[동해]] 앞바다가 사흘이나 얼어붙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, 이해 [[1월]]에는 [[강릉시|강릉]] '''-30℃ 이하,''' [[서울특별시|서울]] '''-35℃ 이하'''의 비현실적인 [[한파]]가 찾아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!!!] 음력 [[3월 5일]](양력 [[4월 11일]])에는 [[서울특별시|서울]]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쌓였다고 한다.[* 사실 [[4월]]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린 경우는 현대에도 간혹 있는 일이지만, [[4월]] 중순에 [[서울특별시|서울]]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쌓인 사례로는 거의 없는 기록이며 후술할 [[1911년]]의 사례가 있다. 당시 [[17세기]]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으나, 앞의 각주에 설명한대로 [[4월]]에 [[동해]]가 얼어붙을 정도의 [[한파]]였고 [[서울특별시|서울]]에서는 적설까지 기록되었다.] * '''[[6월]]''' - 음력 [[5월 3일]]'''(양력 [[6월 6일]])'''에 [[제주시|제주(濟州)]]에서 큰 [[눈(날씨)|눈]]이 내려 국마(國馬) 900여 필이 얼어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, [[충청도]]에서 '''[[서리(날씨)|서리]]'''가 내렸다고 한다. 음력 5월 25일에는 신하들이 '''"여름에 눈과 서리가 내리고 더위와 추위가 바뀌어"'''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[[https://sillok.history.go.kr/id/kqa_10605025_003|상소문]]을 올렸다.[* 양력 [[6월 28일]]자 기록.] * '''[[8월]]''' - 음력 [[7월 22일]]'''(양력 [[8월 23일]]),''' '''[[경상도]]'''에 [[눈(날씨)|눈]]과 [[우박]]이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qa_10607022_001|내렸다.]] * [[1656년]](효종 7년) * [[4월|4]]~[[5월]] - 음력 [[4월 1일]](양력 [[4월 24일]])에 [[전라남도|전남도(全南道)]]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으며, [[4월 12일]]'''(양력 [[5월 5일]])'''에는 [[전라남도|전남도]] [[광주광역시|광주]][* 現 [[광주광역시]]]에서 큰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고 한다.[* 현대에는 [[2010년]] '''[[4월 14일]]'''에 [[광주광역시|광주]]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내려 당일 치뤄질 예정이었던 야구 경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. [[17세기]]에는 이러한 늦장 [[이상 저온]]이 한 달 뒤에도 나타날 정도였던걸로 보인다. 이때 당시 광주의 최'''고'''기온이 9.6℃에 불과했고 서울도 6.4℃에 불과했기에, 단순하게 대입한다면 '''5월 5일'''에 '''광주 최고기온이 9.6℃, 서울이 6.4℃에 불과'''한 셈이 된다. 이미 이 정도만 해도 1917년 5월 초순의 저온보다 더 심각한 셈.] [[11월|11]]~[[3월]]에는 추위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, 양력 [[4월|4]]~[[5월]]에는 [[한반도]] 남부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내릴 정도로 강력한 [[이상 저온]]이 발생한 모양이다. * [[1659년]](효종 10년) * '''[[3월|3]]~[[5월]]''' - 전국 각지에서 강설을 비롯한 [[이상 저온]]이 관측되었다. [[경기도]] [[광주시|광주]]에서 [[눈(날씨)|눈]]이 내리거나 [[함경도]]에서 많은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으며[* 두 기록 모두 [[1659년]] [[3월 5일]](양력 [[3월 27일]])자 기록이다.], [[서울|한성]]에서도 눈이 관측되었다.[* [[1659년]] [[3월 8일]](양력 [[3월 30일]])자 기록] [[4월]]에 들어 [[서울특별시|한성]]에서 태백이 유독 자주 나타났고 '''다시 한 번 [[눈(날씨)|눈]]이 내린 것도 모자라[* [[1659년]] [[3월 25일]]'''(양력 [[4월 16일]])'''자 기록],''' 다음 날에는 '''많은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'''는 기록까지 등장한다.[* [[1659년]] [[3월 26일]]'''(양력 [[4월 17일]])'''자 기록] 이후 [[경기도]] [[광주시|광주]]에서 또 한 번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고[* [[1659년]] [[3월 29일]]'''(양력 [[4월 20일]])'''자 기록], [[충청도|충홍도]], [[전라남도|전남도]], [[강원도]]에서도 [[눈(날씨)|눈]]이 관측되기도 했으며[* [[1659년]] [[윤달|윤]][[3월 2일]]'''(양력 [[4월 22일]])'''자 기록], [[서울특별시|한성]]에서 [[우박]]도 관측되었다.[* [[1659년]] [[윤달|윤]][[3월 4일]]'''(양력 [[4월 24일]])'''자 기록] 게다가 [[윤달|윤]][[3월 10일]]'''(양력 [[4월 30일]])'''에는 두 눈을 의심할 만한 기록이 등장한다. [[강원도]] [[삼척시|삼척]]에 '''바닷물이 얼었다'''는 기록이 나오는데, 양력 날짜상 [[5월]]을 단 하루 앞둔 시기다. 위의 [[1655년]]마저도 [[4월]] 상순에 [[동해]]가 얼어붙었는데, 이해는 [[5월]]을 하루 앞두고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. '''시대를 고려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추위이다.''' [[윤달|윤]][[3월]] 말에는 [[평안도]] [[강계시|강계]] 등지에서 [[눈(날씨)|눈]]과 [[우박]]이 내리기도 했다.[* [[1659년]] [[윤달|윤]][[3월 29일]]'''(양력 [[5월 19일]])'''자 기록] 한편 [[서울특별시|한성]]에서 '''또다시''' [[눈(날씨)|눈]]이 관측되었는데, 그 색깔이 송화가루처럼 노랬다고 한다.[* [[1659년]] [[4월 2일]]'''(양력 [[5월 22일]])'''자 기록] 이러한 일련의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흉년으로 고통받았고, 조정 신하들이 병이나 자책성 사퇴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조정 내부도 어수선해졌으며, 결정적으로 이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얼마 뒤에는 국왕 [[효종(조선)|효종]]이 승하하고 [[현종(조선)|현종]]이 즉위했기에 이 사이에 기후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아, 이 이상 기후가 얼마나 오래 갔는지는 불명이다. * [[1662년]](현종 3년) * [[6월]] - [[강원도]] [[삼척시|삼척]]에서 음력 [[5월 6일|5월 6]]~[[5월 7일|7일]](양력 [[6월 21일|6월 21]]~[[6월 22일|22일]])에 잇따라 밤에 [[서리(날씨)|서리]]가 내려 콩과 삼 등이 모두 손상을 입었으며 [[강릉시|강릉]]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. * [[1665년]](현종 6년) * [[6월]] - 음력 [[5월 2일]](양력 [[6월 14일]])에 [[강릉시|강릉]]에 [[우박]]이 내리고 또 [[서리(날씨)|서리]]가 왔다. * [[1667년]](현종 8년) * [[6월]] - 음력 [[4월 10일]](양력 [[6월 1일]]), [[문천시|문천]]과 [[고원군|고원]] 땅에 [[우박]]이 내렸고, [[함흥시|함흥]] 땅에 [[우박]]과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는데 거의 반 자에 이르렀다고 한다. * [[1670년]](현종 11년) * [[12월]] - 음력 [[11월 2일]]'''(양력 [[12월 13일]]),''' '''[[제주특별자치도|제주도]]'''에 거센 바람과 큰 [[눈(날씨)|눈]]이 동시에 사납게 불어닥친 끝에 쌓인 [[눈(날씨)|눈]]이 '''한 길(약 2.4m)'''이었다고 하며, 기근에 지쳐 열매를 주우러 산에 올라간 91명이 이 쌓인 [[눈(날씨)|눈]]에 갇혀 '''그대로 얼어죽어버린''' 기록이 등장한다. * [[1671년]](현종 12년) - '''[[경신대기근]]이 발생한 해이다.''' 이해에는 [[조선]]에서 위의 [[1654년|1654]]~[[1655년]]에 버금가는 [[이상 저온]]과 [[한파]]가 찾아온 것으로 보이는데, [[조선왕조실록]]에는 이해 추위에 관한 기록들 중 아래의 대목이 눈에 띈다. >기근의 참혹이 올해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.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므로 서로 모여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. 그리하여 집에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자는 곧 겁탈의 우환을 당하고 몸에 베옷 한 벌이라도 걸친 자도 또한 강도의 화를 당하고 있으며, 심지어는 '''무덤을 파서 관을 뻐개고 고장(藁葬)을 파내어 염의를 훔치기도 합니다.''' * 너무나도 살인적인 [[한파]]에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'''무덤을 파서 시체에 입혀진 옷을 훔쳐 입었다'''는 이야기인데, 이해에 [[조선]]을 덮친 [[한파]]의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. * [[5월]] - 음력 [[3월 28일]](양력 [[5월 6일]]), [[평안도]] [[초산군|이산]][* 現 [[평안북도]] [[초산군|초산]]] 등 네 고을과 [[황해도]] [[수안군|수안]], [[경상도]] [[창원시|창원]], [[강원도|원양도]] [[원주시|원주]], [[충청도]] [[단양군|영춘]][* 現 [[충청북도]] [[단양군|단양]] [[단양군/행정#s-3.5|영춘면]] 일대이다.], [[전라도]] [[남원시|운봉]][* 現 [[전라북도]] [[남원시|남원]] [[남원시/행정#s-2.1|운봉읍]] 일대이다.] 등 고을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는데 서너 치 또는 한두 치씩 땅에 쌓여 녹지 않았으며, 여섯 [[도(행정구역)|도]]의 감사가 잇따라 아뢰었다고 한다. * [[7월]] - 음력 [[5월 29일]](양력 [[7월 5일]])에 [[함경도]] [[경성군|경성]] 장백산(長白山)에 [[눈(날씨)|눈]]이 한 자쯤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워서 농사를 크게 손상시켰으며 남도(南道) 각 고을의 밀, 보리가 황모가 드는 재해를 입어 거의 다 말라 죽었다고 한다.[* [[함경도]] [[경성군|경성]](現 [[함경북도]] [[경성군|경성]])은 [[개마고원]] 등 [[북한]]의 추위로 유명한 지역들에 비하면 많이 온화한 기후를 가지는 지역이다.] * [[1672년]](현종 13년) * [[6월]] - 음력 [[5월 7일]](양력 [[6월 2일]]), [[평안도]] [[덕천시|덕천]]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으며 [[운산군|운산]] 등의 고을에는 주먹만 한 [[우박]]이 내려 땅에 거의 한 자 가량 쌓였는데, 하루가 지나도 녹지 않았다고 한다. * [[1675년]](숙종 1년) * [[5월]] - 음력 [[4월 28일]](양력 [[5월 22일]])에 [[경상도]]가 가물었고 [[풍기군|풍기]][* 지금의 [[경상북도]] [[영주시|영주]] 서북 지역에 있었던 [[군(행정구역)|군]]으로, 현재의 [[영주시|영주]] [[풍기읍]], [[봉현면]], [[안정면]]과 [[예천군|예천]] [[예천군/행정#s-13|은풍면]], [[예천군/행정#s-12|효자면]]이 속한 지역이다.]와 [[밀양시|밀양]] 등의 여러 고을에는 [[눈(날씨)|눈]]이 내리고 또 된서리가 와서 괸 물에 얼음이 얼었고 [[뽕나무]]의 잎이 다 죽었으며 보리와 조가 소금에 절인 것처럼 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. * [[1677년]](숙종 3년) * [[6월]] - 음력 [[5월 25일]](양력 [[6월 24일]]), [[충청도]] [[제천시|제천]]에 [[서리(날씨)|서리]]와 [[우박]]이 내렸다. * [[1686년]](숙종 12년) * [[9월]] - 음력 [[8월 25일]](양력 [[10월 12일]])에 [[조선왕조실록]]에 작성된 기록에 의하면, [[진주시|진주]] 등의 고을에 이달 초 7일'''(양력 [[9월 24일]])'''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려 제비와 참새가 얼어 죽었고[* 이 지역이 상당한 일교차를 자랑하는 지역이기에 9월 하순에 눈이 내리고 새들이 얼어죽었다면 영하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. 참고로 1969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로 9월 하순에서 가장 낮은 기온은 6.2℃.], [[영덕군|영해(寧海)]][* 現 [[경상북도]] [[영덕군|영덕]]] 등 다섯 고을에는 (같은 날에) 바다가 넘쳐서 바닷가의 어민들의 집이 여러 채 떠내려갔으며, [[서리(날씨)|서리]]와 [[눈(날씨)|눈]], 바람과 [[비(날씨)|비]]의 재앙으로 각종 곡식들이 모조리 손상을 입어 온 [[도(행정구역)|도]]의 백성들이 떼지어 울부짖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. * [[10월]] - 음력 [[9월 9일]](양력 [[10월 25일]]), [[제주특별자치도|제주도]]에서 기르는 2,890마리의 소와 말이 얼어죽었다고 한다. [[겨울|한겨울]]에도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[[제주특별자치도|제주도]]에서 [[10월]]임에도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보면, 웬만한 [[겨울|한겨울]] 이상 급의 강도로 시기에 걸맞지 않은 비정상적인 [[한파]]가 온 것으로 보인다. * [[1687년]](숙종 13년) * [[6월]] - 음력 [[4월 22일]](양력 [[6월 1일]]), [[전라도]] [[무주군|무주]]에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. * [[1695년]](숙종 21년) * [[8월|8]]~[[10월]] - 음력 [[7월 7일]]'''(양력 [[8월 16일]])'''에 '''[[경상남도]] [[진주시|진주]]에서 3촌 가량의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'''고 기록되어 있다. 현대에는 35℃가 넘어가는 [[폭염]]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인 [[8월]]에 따뜻한 남부 지방인 [[진주시|진주]]에서 [[폭설]]이 내렸다는 이야기인데, 매우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. 음력 [[7월 21일]]'''(양력 [[8월 30일]]),''' [[평안도]] [[강계시|강계]] 지방에 [[눈(날씨)|눈]]과 [[서리(날씨)|서리]]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고[* 현대 [[강계시|강계]]의 [[8월]] 평균 기온은 [[서울특별시|서울]]의 [[9월]] 날씨와 거의 일치한다. [[서울특별시|서울]]에서 [[9월]] 하순에 [[눈(날씨)|눈]]이 날리고 [[서리(날씨)|서리]]가 발생한 것과도 비슷한 사례이다.][* 물론 [[진주시|진주]]는 내륙이라 현대에도 일교차가 무지막지하게 커서 최저 기온은 꽤 낮은 경우가 많다. [[2021년]]에는 '''[[10월 18일]]'''에 영하를 기록했을 정도다. 그러니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을 시간인 밤과 새벽에 눈에 내렸다고 하면 그나마 아귀가 들어맞을 것으로 보인지만, 그렇다 쳐도 [[강원도]] 산간도 아니고 [[8월]]에 따뜻한 [[경상남도]] 지역에서 적설이 쌓일 정도의 눈이 내렸다.] 게다가 양력으로 [[10월]] 중순부터 전국적으로 [[서리(날씨)|서리]]가 계속 발생했다고 하니 이해 [[이상 저온]]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. 이와 같은 심한 [[이상 저온]]의 여파로, 이해에는 [[을병대기근]]이 발생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